춘하추동-에필로그2-1

춘하추동-에필로그2-1

석두 4 5,487
1967년 3월의 어느 일요일, 부산의 햇살은 포근합니다.
겨우내 입었던 동내의 빨아서 양지에서 말려서 다시 올 겨울을 대비하여 관물칸에 잘 정돈해 두었습니다. 이제 군대생활도 5개월이 좀 넘었습니다.
대구 50사단에서 6주간 훈련받고(실은 2주간 훈련받고 4주간 뺑기로 훈련소훈련과정 그림그렸습니다)부산 반여동 병기학교에서 병기보급주특기로 2등으로 졸업합니다. 3등까지 근무할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집니다.
나는 일선 최전방으로 가고 싶습니다. 병기학교에서는 부산 출신이니 자대 배치 받는 게 어떻느냐고 넌지시 권합니다. 그런데 조교가 적어놓은 희망예정 부대 101보, 103보, 자대, 군기사를 보니 군기사의 그 별7개 짜르르 그려진 부대마크가 눈에 선하여 그만 군기사를 선택하고 맙니다.
부산 사창가의 대명사가 완월동과 300번지입니다. 300번지 맞은편에 군기사  9보충대가 있습니다..
그  9보충대에서 특명이 나길 기다리는 어느 밤 꿈에 자염이가 내게 폭,  그 앙증맞은 팔로 나를 억세게 그리고 뜨겁게 끌어 안습니다.
염아! 넌 죽었잖아?
내가 왜 죽어. 이렇게 미스타전을 안고 있잖아.
꿈은 영판 생시입니다. 정말 미치게 보고 싶었던 소녀입니다.
우리는 뜨겁게 입을 맞춥니다.
꿈은 기상!하는 말번의 외침에 깨어집니다.
나는 1206건공단 행 명을 받습니다. 단장 따까리가 지 조수로 날 콕 찝었는데, 덤프추럭중대 중대장의 병기보급주특기 요원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요청에 의해 말단 담프추럭만 52대인 중대로 내려갑니다.
당시 1206건설공병단 단본부는 부곡동 산 중턱에 있고 중대는 부산대학교 구정문 아래에 2개 부대가 주둔하였으며, 담프추럭중대는 부곡동에서 장전동 넘어오는 온천천 변에 있었습니다.
 그 당시 그 주변은 논과 밭이였고, 부산대학교 방면으로 비포장도로가 부대 옆을 지나 훗날 태광산업이 들어선 동네인 구서동을 이어줍니다. 13세 년하의 정선이 이야기 나오는 구서동입니다.
동내의(겨울내복)를 빨아 말려서 관물정리하고 한 그날 야간에 정문 보초를 섭니다.
밤에 남쪽을 보면 부산 시내의 불빛이 밤하늘을 희미하게 밝혀 줍니다. 나는 부대안의 제일 쫄병입니다. 부대원의 3/4가 운짱들이라 군대생활 무지 고롭습니다. 툭하면 부대 최고참이 고무호스로 행정병이고 운전병이고 가리지 않고 발바닥을 두들깁니다.
그럴때면 정말이지 탈영하고 싶습니다. 그렇지않아도 조금만의 여유가 생겨도 자염이의 추억이 떠 오르고 그 애의 죽음이 아무래도 내 탓이라고 여겨 무척 괴롭습니다. 
훈련소 입소 전 신체검사에서 내 왼손목 끊어진 신경 때문에 군의관은 날 병종 처리할려고 했습니다. 그러면 다음 해 또 징집 당합니다. 다시 징집 당할때까지 백수로 사회에 나간다고 생활방편이 없습니다.
그리고 그 사회 당분간 보고 싶지 않아 간청하여 입대했더랬습니다.
훈련소 생활과 병기학교 생활은 자염이를 잊기에 충분하게 바빴는데 쫄병 기간병 생활이 더욱 적응이 안됩니다. 적응이 안되니 자염이 생각 더 나고 자구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되면서 나는 극도의 허무주의자가 됩니다. 물론 그 전에도 염세주의자였지요.
너가 나 땜에 죽었으니 나도 죽을란다. 그래서 자살을 생각합니다.
정문 보초 교대를 한 나는 캄캄한 비포장도로, 즉 영외로 휘적휘적 나갑니다. 

Comments

마법사 온
리플은 없지만,, 잘보고 있습니다. 
mamelda
떨쳐지지않는 자염이.... ㅡㅡ^
실장님 다음은 어떻게???
67년생인 남푠이 41세인데.... 군대...
헉... 계산기 필요^^ㅋ 
냐냐
마니본 동네 이름들...흠.... 
★쑤바™★
으어어어.....여기서...끊기면...안되요...안되는데....ㅠ_ㅠ
미쳐.....OTL......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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